<책 속으로>
한참이나 이러하고 있을때, 자박자박하는 신발 소리에 그는 가만히 머리를 돌리를 바라보았다. 호박잎이 그의 눈썹 끝에 삭삭 비비치자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눈물속에 비치는 저 큰년이! 그는 눈가가 가려운 것도 참고 눈을 점점 더 크게 떴다.
빨래 함지를 무겁게 든 큰년이는 이리로 와서 빨래 함지를 쿵 내려 놓고 일어난다. 눈은 자는 듯 감았고 또 어찌보면 감은 듯 뜬 것같이도 보이었다.이제 빨래를 했음인지 양볼에 붉은 점이 한점 두점 보이고, 턱이 뽀죡한 것이 어디 며칠 앓은 사람 같다. 큰년이는 빨래를 한가지씩 들어 활활 펴가지고 더듬더듬 바자에 넌다.
칠성이는 숨이 턱턱 막혀서 견딜 수 없다. 소리나지 않게 숨을 쉬려니 가슴이 터지는 같고, 뱃가죽이 다잡아 씌었다. 그는 잠깐 머리를 숙여 눈물을 씻어낸 후에 여전히 들여다 보았다. 지금 그의 머리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그저 큰년이 동작으로 가득했을 뿐이다.
큰년이는 한가지 남은 빨래를 마저 가지고 그 앞으로 다가온다. 그때 칠성이는 손이라도 쑥 내밀어 큰년의 손을 덥석 잡아보고 싶었으나, 몸은 움찔 뒤로 물러나지며 온 전신이 풀풀 떨리었다. . . . . .
강경애(1906.4.20.~1943.4.2.)
일제강점기 여성 소설가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사회적 인간관계와 빈곤한 생활 등에서 겪는 문제들을 파헤치고 사회의식을 강조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1931년 <조선일보>에 단편소설 「파금」을, 같은 해에 잡지 <혜성>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고 문단에 등장했다. 1932년 단편소설 「부자」 「채전」 「소금」 등을, 1934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인간문제」를 연재했다. 그 외에 주요 작품으로는 「해고」 「지하촌」 「어둠」 「축구전」 「유무」 「모자」 「원고료 이백 원」 「산남」등이 있다.